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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브라운 아이드 소울)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나야 하는지
얼마나 많은 날들을 보내야 하는지
지친 내모습 뒤에 남겨진 건 한숨뿐
아무렇지 않은듯 내게 속삭이는 이밤

누군가 내게 말했지 쉽진않을 거라고
벗어나려할수록 더 힘겨워질 거라고
지쳐버린 모습뒤로 남겨진건 후회뿐
아무렇지 않은듯 내게 다가오는 이밤

tell me why tell me please tell me why
(tell me how can i move on)
이젠 나 버틸수 없는데
tell me why tell me please tell me why
더이상 무엇도 지켜낼수 없는데

단한번이라도 돌아갈수만 있다면
단한번만이라도 멈춰질수 있다면
상처받은 내마음은 갈곳을 잃었는데
아무렇지 않은듯 나를 스쳐가는 이밤

그렇게 멈춰버린 소중했던 기억도
사랑했던 기억도
이제는 돌이킬수 없는데
아무런 소용없어 고장난 시계처럼
너는 사라지지 않는데 견딜수가 없는데
지난날 찾을수만 있다면
모든걸 되돌릴수 있다면

tell me why tell me please tell me why
(tell me how can i move on)
이젠 나 버틸수 없는데
tell me why tell me please tell me why
더이상 무엇도 지켜낼수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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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한참을 서있었는지

멀리 너의 모습 보면서

그 모습 사라질 때까지

나의 발걸음은 움직일 수 조차 없었지

내가 어떤 사랑 받았었는지

내가 어떤 아픔 줬는지

이제야 널 보낸후에야

돌아선 후에야

다시 후회하고 있잖아

떠나간 다른 사람때문에

비틀거리던 나를 힘들게 지켜주던 널

바라보지 않았지

그렇게 사랑이 온지 몰랐어

기대어 울기만 했잖아

그런 내 눈물이 너의 가슴으로 흘러

아파하는걸 나는 밀어냈었지

사랑은 떠난 후에야 아는지

곁에 두고서 헤메인건지

이제야 알겠어

너에게 기대에 울던 그 순간들이

가장 행복했었던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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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한 해 전에 M이 우리 집에 두고 갔던 책, “책 열권을 동시에 읽어라.”라는 책에 따라, 내가 그 뒤로 꼭 했던 건 책 여러권을 동시에 읽는 것이다.  한국에 온 뒤로는 책을 이곳저곳에 둘 수 없어 그냥 내 방에다만 두고 있지만 어쨌든 침대에서 거실에서 그리고 지하철 안에서 여러권을 읽고 있다.  이책을 읽었다 저책을 읽었다 하는 것의 궁극적인 목표는 다양한 장르를 동시에 읽음으로서 지루함을 달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으려는데 있다.  허나 지금의 내 경우는, 글쓰기에 있어서 기본 지식이 부족한 바 같은 분야의 여러권의 책들을 동시에 읽고 있는 중이다.  지금 현재 내가 읽고 있는 책은 다음과 같다. 


  • 장기오 PD의 TV 드라마론
  • 제임스 미치너의 작가는 왜 쓰는가
  • 내 인생의 지침, 논어
  • 박완서의 옳고도 아름다운 당신
  • 2003 한국 시나리오 선집; 선택, 지구를 지켜라, 살인의 추억, 와일드 카드, 싱글즈,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4인용 식탁, 스캔들, 올드보이, 실미도
  • 도종환 시인의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 심산의 시나리오 워크숖; 한국형 시나리오 쓰기
  • 사이드 필드의 시나리오란 무엇인가
  • 성전 탈무드
  • 파멜라 더글러스의 TV 드라마 시리즈물 어떻게 쓸 것인가
  • 보바리 부인

어쩌다보니 정말 딱 열권을 동시에 읽었던 것 같은데, 읽다보니 나름 읽기의 순서가 정해져버렸다.  우선 TV 드라마론을 주로 읽고 자기 전에 논어나 옳고도 아름다운 당신 또는 탈무드로 나의 하루를, 그리고 생활을 반성해보며 마무리한다.  또한 사이드 필드의 시나리오란 무엇인가는 완전 개론에 관한 책으로 이건 교육원에서 글쓰기를 배우며 같이 읽는게 좋겠다고 생각해서 잠시 접었다고나 할까.
어쨌든 가장 먼저 책 읽기를, 오늘, 끝낸 책이 바로 “작가는 왜 쓰는가”이다.  나는 출판사가 책 제목을 오역했다고 생각한다.  영어 원제는 “Literary reflections”이다.  저자가 작가 인생 90년을 돌아보며 문학적 사견을 되짚은 회고록인데 어떻게 저런 제목으로 하였는지… 어쨌든 이 책은 우연히 반디앤루니스에 “유혹하는 글쓰기” 책 번역본을 사볼까 영어본으로 사볼까 하고 뒤지고 있던 찰나에 그 책 번역본은 품절이라 그 주변 코너를 돌아보던 중에 우연히 발견한 책이다.  저자는 퓰리처상 소설 부분 수상작가로 자신의 일생동안 문학적 영향을 주었던 작품과 작가들에 대해 자신의 일생 일대기를 거쳐 이야기해주고 있다.   읽다보면 참 많이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또 그 느낌과 소견, 생각을 기록해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책들이 나의 자산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  Literary Reflection을 통해, 그리고 평소 내가 한국에 오면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기록해보았다. 

  • 모비 딕
  • 딜라일라
  • 카라마초프가의 형제들
  • 개미
  • 안나 카레니나
  • 죄와 벌
  • 허영의 시장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 노인과 바다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연애 대위법, Point counterpoint
  • 막스 하뷜라르
  • 부덴부로크 일가
  • 맥티그
  • 마의 산, The magic mountain
  • 미메시스
  • 삼국지
  • 폭풍의 언덕
  • 크랜포드
  • 에탄 프롬
  • 테스
  • 캐스터브리지 읍장
  • 터무니 없는 이야기
  • 위대한 유산 
  • 지그프리트
  • 무사다그에서의 40일
  • 명예의 수호자
  • 남태평양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6
  •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최인호의 유림, 상도, 길 없는 길, 잃어버린 왕국
  • 박경리의 토지, 김약국의 딸들, 나의 문학 이야기, 문학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에게 
  • 조정래의 태백산맥, 한강, 스토리텔링 육하원칙
  • 이제하의 능라도에서 생긴 일
  • 김훈의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남한 산성
  • 오정희의 새, 불꽃놀이
  •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깊은 슬픔, 외딴방, 풍금이 있던 자리
  • 박범신의 촐라체, 외등, 더러운 책상, 남자들 쓸쓸하다, 비우니 향기롭다
  • 현기영의 지상에 숟가락 하나, 누란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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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때와 이별할 때의 공통점이 뭔지 알아?"

 "…….??? 뭔데?"

"모든 노래가 다 자기 이야기 같다는거야. 그 노래에 감정 이입하게 되고 그 노래의 주인공이 꼭 다 나인 것만 같지."



노래를 듣다가 두근두근거려서….
그리고 Shuffle 끄고 Repeat으로 바꿔 듣는 나를 발견해서….
정말 그런가보다.

"이별할 때와 사랑할 때의 차이점이 뭔지 알아?"
"뭘까?"
"이별할 때 들으면 쨘하고 눈물나던 곡들이, 같은 곡인데도 불구하고 사랑할 때 들으면 아무리 들어도 슬프지 않아.그냥 그런 노래일 뿐이지."


예전에 헤어지고 나서 들을 때마다 눈물이 흘렀던,도쿄 지하철 타고 가는 내내 한곡만 반복청취했던 곡 있었는데,
이제는 아무리 들어도 눈물이 안 나더라. 

이곳, 음대 도서관 창가에 앉아있는데
따스하게 사선으로 들어오는 햇빛과
바깥에서 바람에 흩날리는 초록빛깔이 반짝반짝 거리는데
에어콘으로 완전 차가운 내 몸과는 달리
내 마음은 참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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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고맙다. 너무 힘들었거든…괜찮다고 말해줘서 너무 고마워.누군가에게 그 말이 너무 듣고 싶었는지도 몰라.가슴 속에 있던 돌덩이가 모래로 부서진 기분이랄까.이제 속이 조금 뻥 뚫린 기분이랄까.너무 고마워. 정말정말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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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생각해 볼 순 없는건가?"

-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두개의 이윤기 감독의 작품을 보았다. “멋진 하루”와 오늘 본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어느밤에 숙제를 하면서 본 “멋진 하루”는 잔잔함에도 불구하고 여운이 남는 영화였다.  동시에 ‘내가 어렸더라면 아마 공감하지 못 해서 굉장히 지루했을 법한 영화’ 이기도 했다.  헤어진 이후에 다시 만난 옛 애인. 그런데 그 헤어진 이유가 싫어서라기 보단 더 조건이 좋은 남자랑 결혼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결국 그렇게까지 하면서도 그 남자가 그 좋던 직장을 그만 두었기 때문에 결혼하지도 못 했다.  그 뒤로 결혼을 핑계로 그만 두었던 직장도 없이 홀로 사는게 어려워 옛 애인이 갚지 않았던 자신의 돈을 다시 받기 위해, 경마장으로 옛애인을 찾아가고, "하루동안" 그 옛애인과 이곳저곳을 돌며 그 돈의 액수를 채우기 시작한다. 

헤어진 옛애인을 돈을 받기 위해 찾아간다라는 표면적 이유.  밖에서 보기엔 참 황당해 보일지도 모른다.  나도 예전에 애인에게 돈을 못 받고 헤어진 것이 있는데 찾아갈까. 그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돈 보다도 그녀에게 필요했던 건 한마디 진심어린 위로의 말과 따뜻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한때는 가장 많이 기댔지만 이제는 기댈 수 없는, 그래도 나를 진심으로 이해해 줄 수 있는, 친구보다도 어찌보면 더 가까운 것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었을까. 돈을 받으러 다니는 내내 그녀는 남자에게 계속 짜증을 낸다. 그리고 때로는 질투도 한다.  하지만 돈보다도 그녀에게는 보고 싶은, 그리고 짜증을 받아줄 수 있는 그가 있었기 때문에 "멋진 하루"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저그런 친구 사이에는 짜증을 절대 내지 않는다.  표면적으로 잘 지내야 하니까.  여자로서 친한 친구들 사이에도 짜증은 내지 않는다.  여자들은 살짝만 삐지고 토라져도 우정에 금이 갈 수 있는 섬세한 존재이기 때문에.  하지만 남자친구에겐 다르다.  엄마에게 하듯 편하게 짜증을 낸다.  마음의 마지막 벽마저 내려놓을 수 있는 그런 관계가, 바로 여자에겐 남자친구이다.  그래서 현재 바닥을 치고 있는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기대어 짜증을 부리고 하루를 같이 멋지게 보낼 수 있는 최후의 사람은 옛 애인이었던 것이다.  

이렇듯 어렵지도 않은 단순한 이야기를 여러사람들을 만나는 짧은 에피소드 여러개로 묶어나가며 큰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것이 “멋진 하루”라는 영화의 매력이었다.  그래서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라는 새로운 영화 또한 기대되었다. 이번엔 또 어떤 잔잔한 이야기를 인상깊게 풀어나갈까 해서.

이 영화는 다른 두시간이 넘는 영화에 비해서는 대사가 매우 적다.  인물의 단독컷도 많고 표정, 몸짓, 그리고 분위기에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는 영화다.  촬영 장소도 딱 두군데.  자동차 안과 집.  집은 2층, 1층, 그리고 지하실. 이렇게 총 네군데에서만 촬영했다.  스토리도 한줄 요약 가능하다.  바람난 아내의 짐을 싸주는 한 남자, 그리고 그 아내의 마지막 하루.  그런데 원작의 몇장도 안 되는 단편을 이 감독은 두시간 넘게로 길게 풀어냈다.  이 영화의 숨은 매력이 뭘까? 

영화의 제목과 관련 지어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마지막 하루를 보내는 이 커플은 계속해서 머리 속으로 생각한다.  이 사람을 사랑하느냐, 하지 않는냐. 그래서 잡고 싶어하기도 하고, 그냥 깨끗이 보내주려고도 하고.  그런데 그런 행동이나 말은 하나도 하지 않는다.  단지 그런 마음은 오직 흔들리는 눈빛에서만 나타난다.  처음엔 화를 내지 않는 이 남자가 의아했다.  왜 화를 내지 않을까… 그런데 이 남자가 말한다.  이미 돌아선 마음을 되돌릴 수는 없다고.  그리고 미안하다고 하는 그녀에게 늘 입버릇처럼 말한다.  

"괜찮아."

나도 입버릇처럼 말했던 경험이 있다.  ”괜찮아.”  그런데 마음은 괜찮지가 않다.  힘들고 아프도록 괜찮지가 않은데 그 사람한텐 괜찮다고 말한다.  계속해서 눈물은 나는데 괜찮다고 말한다.  뛰어가서 붙잡고 싶은데 괜찮다고도 말했었다.  사실 속마음은 이랬다.  

'하나도 괜찮지 않아. 나는 정말이지 괜찮지 않아.  화가 나. 아주 많이. 돌아버릴 것 같애. 미칠 것 같아. 나한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돌아와서 나를 돌아봐줘.  가지 말아줘.  나 지금 힘들어.  나를 사랑해줘.”

늘 마음은 이랬다.  하지만 늘 말하지 못 했다.  그 남자도 그랬던 것 아닐까.  쿨하게 보내주려고가 아니라 힘들어서 무너져가는 자기 자신을 다져 잡기 위해서 최면을 건거다.   자기 최면을.  무너지고 쓰러지려는 자기 자신을 그렇게 다져잡은거다.  그녀에게 마지막까지 멋지게 보이고 싶어서 레스토랑을 예약했던 것이 아니라, 그렇게라도 마지막을 행복하게 함께 하고 싶어서 레스토랑을 예약했을 것이다.  비와서 다리가 무너져서 서울에 갈 수 없게 되었을 때 살짝 반가워하며 커진 눈망울이 참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그녀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그녀의 그 남자에게.  그걸 듣는 남편은 티비에서 흘러나오는 뉴스 따위는 안중에 없고 오직 전화에만 온 신경이 가 있다.  그리고 잠시 반가웠던 그 마음은 롤러코스터 밑으로 한없이 떨어지듯이 다 쏟아내진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아무것도 내색하지 않는다.  

마지막에 양파를 썰다가 매워서 나는 눈물은 내 마음의 솔직한 눈물과 섞여서 비처럼 같이 흘러내려간다.  마음이 아파서 어지럽지만 진정하려고 하는 그에게 양파 향은 계속 눈 속에 매운 향을 가득히 피워댄다.  파스타를 접시에 담아대며, 낯선 집에 어려워하며 조용히 앤초비를 먹는 새끼고양이에게 아내는 말한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질거야."

그런데 갑자기 영화가 끝나버렸다.  둘이 다시 서로의 흔들리는 맘을 알게되고 다시 잘 되진 않을까?  그런 결말을 기대했던 나로서는 잠깐 당황해버렸다.  엇! 벌써 끝이야? 하고.  그런데 잠시 문득 생각해보니 아. 그렇구나 싶다.  다시 잘 되는건 영화지, 현실은 늘 이렇지.  맞아.  현실은 늘 흔들리는 자신의 마음을 전하지 못 하고 그대로 사랑이 끝나버리는 쪽을 택하지.  맞아….. 그런 생각을 해보니 아, 이게 이윤기 감독의 매력인가 싶다.  ”멋진 하루” 영화의 결말 부분도 그러했다.  하정우를 전철역에 내려준 전도연은, 전철을 탄 하정우를 앞질러 그가 도착할 역에 미리 가 있다.  그리고 차 안에서 백미러로 그가 걸어가는 길을 지켜본다.  그리고 허-참. 훗하며 ‘내가 뭐하는거지.’ 하는 표정으로 웃으며 떠난다.  그때도 역시 마찬가지의 느낌으로 보았었다.  해피엔딩이 아닐까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는… 헤어진 애인 다시 붙잡아봐야 뭐하나.  헤어진 애인은 헤어진 사이인데.  그리고 우린 다시 제대로 되지 않는데.  한번 헤어지면 또 헤어질텐데.  살짝 흔들리는 마음으로 그리움으로 한번 쳐다보고 훗하고 다시 돌아가는 그녀의 모습은, 우리가 모두 한번쯤 경험해 봤음직한 그런 일들 아닐까?  

요즘 트렌디한 로맨틱 코메디의 흐름; 남주나 여주 중 한쪽이 상류층이나 잘 나가는 재벌, 나머지 한쪽은 서민이나 비주류, 이런 경우에 둘이 잘 되는 것으로 끝나는 동화 속 신데렐라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현실의 그 느낌 그대로여서 이 감독의 영화는 나로서는 크게 매력이 있다.  물론 신데렐라의 이야기가 나쁘다는 건 아니다.  현실에서는 실현 가능성이 0.00000…..1%니까 모든 여성들의 로망이고, 그런 로망이 있기 때문에 열혈 애청자들이 생기는 건 사실이지만, 나는 오히려 현실의 99.9999999….9% 아프고 실현당하고 괴로워하고 그리워하고 헤어지고 그런 이야기들이 더 공감이 된다는 말이다.  

현실의 멀지 않는, 가까운 이야기를 어떻게 짧은 시간 60분 내에 풀어낼 수 있을까.  어떻게 첫 5분 내에 인물의 배경과 성격을 풀어내고 동시에 그들간의 갈등을 바로 등장 시키며 나머지 55분 동안에 제 2,3의 갈등을 엮어내고 풀어낼 수 있을까.  아님 풀지 않고 시청자들에게 질문을 던져버릴까.  이것저것 생각이 많이 드는 영화다.  

이 영화를 보며 훌륭하다고 생각했던 점은 우선 배우들의 동작과 표정이다.  특히나 흔들리는 눈빛, 그리고 손가락 움직임, 한숨, 침 삼킬 때 목젖 하나하나까지 잡아낸 그 시선이 매우 칭찬해줄 부분이다.  또한 중간 중간 삽입된 비오는 장면들이 매우 훌륭하게 잘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촬영 상에서 좋았던 부분은, 임수정이 베란다를 나갔다 들어왔다 하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부분이다.  안팎으로 왔다갔다 거리는 부분을 사이로 화면을 잘 분할하였고, 유리를 통해 투영되 두가지의 모습을 담아낸 것이 매우 좋았다.  사실, 유리를 통해 두가지의 다른 모습을 가장 잘 담아냈던 작품은 송해성 감독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인데, 그 영화에서는 각자 다른 두 사람의 교감을 유리를 통해 잘 드러냈고, 또 유리 자체가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어떤 벽으로서의 역할을 잘 했다면, 이 영화에서 베란다 유리는 흔들리는 두가지 마음, “사랑한다”와 “사랑하지 않는다” 사이의 들락날락 거리는 마음의 벽, 실제로는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두가지 마음의 벽을 잘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배우의 연기로서 좋았던 장면은, 베란다 유리 앞에 서있는 현빈이 뒤에 있는 임수정을 뒤로 힐끗 보았다가 한숨을 쉬었다가 눈을 돌리는 장면이다.  대사도 없었고 크게 임팩트가 있는 부분은 아니었지만 흔들리는 마음을 잘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재미가 있었던 부분은, 임수정의 그 남자에게 전화오는 부분이었는데, 어디선가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분명 내가 목소리가 좋다고 생각했던 배우인데….누구지? 누구지? 하다가 알아버렸다.  이 감독의 전작, “멋진 하루”에서 나왔던 배우 하정우씨의 목소리다.  또 그 장면에서 고양이 주인으로는 “여자, 정혜”에서 나왔던 김지수씨가 까메오로 나왔다.  재미있는 부분이다.  

영화를 보며 아쉬웠던 점은, 물건 하나하나를 챙길 때마다 어떤 추억이 어린 듯 한데, 가끔은 어떤 추억이 어렸는지 비추어 주었다면 더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스타 책에 관한 에피소드는 배우들의 말로써 풀어냈었지만, 분홍 셔츠나 아끼던 찻잔, 가방의 경우는 무언가 더 사연이 있을텐데 그냥 관객들은 모른채 넘어가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도 또한 가끔 어떤 옷들을 보면서 옛추억에 잠시 그리워할 때가 있는데 그런 옛추억까지 조금더 풀어 내 주었더라면 관객들도 더 공감하지 않았을까 싶다.  또한 마지막 장면에서 임수정의 “괜찮아”라는 대사로 그냥 끝을 내버렸는데, 그 대사 후에 살짝 맑아오는 하늘 또는 빗방울이 이제 점점 얇아져서 풀잎사귀에서 바닥으로 살짝 미끄러져 떨어져 내리는 빗방울 정도로 마무리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비온 뒤에는 다시 맑은 날이 오니까.  그게 더 “괜찮아”의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건 아주 미세한거지만 현빈의 파스타 만드는 씬에서는 파스타 면을 삶는데 소금을 엄청 많이 두 숟가락씩이나 넣었는데, 그리고 올리브유를 완전 들이 붓던데 그렇게 했다간 완전 느끼하고 짜다.  소금은 아주 적게, 그리고 올리브유도 티스푼으로 한스푼 정도면 되는데 너무 많이 넣는 것 같아서, 심각한 영화에 피식하고 웃게 되었다.  또한 마늘도 너무 굵게 썰고 후라이팬으로 올리브유에 볶는 장면에서 너무 후라이팬을 뒤짚어대서 계속 웃었다.  심각하고 진지한 영화라면 그 정도까지 체크해주는 섬세함까지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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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깨가 아파서 파스를 붙이고 다음날 일어나서 목욕 하기 전에 떼려고 하는데 머리가 왕창 붙어서 억지로 떼어내려 하다가 머리가 왕창 뽑힐 때
  • 사랑니를 뽑아서/다이어트를 시작해서 당분간 제대로 먹지 못 하는데 친구들이 삼겹살이나 고기 먹자고 막 문자가 올 때
  • 눈 바로 밑에 뽀드락지가 나서 짜다가 눈물이 왕창 쏟아질 무렵
  • 화장실 바닥 청소를 하려고 비눗칠 해놓고 잠깐 전화가 와서 나갔다 다시 들어왔다가 욕조 바닥에 미끄러질 때
  • 아파트 곧 절수한다고 해서 급하게 머리 감고 샴푸질 다 해놨는데 물이 끊기고 냉장고엔 생수도 하나도 없을 때
  • 어젯밤에 맛있게 먹고 테이블에 냅둔 케잌, 다음 날에 개미가 막 꼬여있을 때
  • 좋아하는 남자 애 옆에서 조신하게 눈길을 걷다가 뒤로 자빠져서 내리막 길을 훅 쓰러져 미끄러져 내려갈 때
  • 이거살까 저거살까 계속 십분이상 고민하다가 손 내민 순간 다른 누군가가 낚아채어 갔을 때
  • 버스가 와서 막 달려갔는데 막 출발해서 눈 앞에서 놓치고 신호등에 걸린거 보고 뛰어갔고 버스 안 사람들도 다 쳐다보고 있는 상황에서 버스 아저씨 문 안 열어주고 신호등 바뀌자마자 출발 할 때
  • 좋아하는 친구랑 아이스크림점에 들어가는데 앞뒤로 사람들 많고 그 상황에서 자동문에 얼굴이 끼어버렸을 때
  • 버스 안에서 서서 손잡이 잡고 있다가 급정거해서 앉은 아저씨 무릎 위에 한회전하면서 앉아버릴 때(여고생)
  • 엘레베이터 고장나서 17층까지 걸어올라왔는데 도착하는 순간 사람들이 엘레베이터 타고 올라오는 걸 볼 때
  • 소개팅 자리에서 멋있게 보이려고 에소프레소 시켰고 저 원래 이런거 좋아해요 하다가 너무 작은 잔에 나오는거 보고 한번 놀라고 써서 한번 놀라고
  • 소개팅 하고 있는데 그 전 주에 잘 되어가는 소개팅남이 나를 보고 문자를 보냈을 때
  • 전날 맛있는 찌개를 해놓고 외출하고 왔는데 그날 온도가 너무 올라가서 집에 돌아오니 다 상해 있을 때
  • 화장실에서 볼일 보고 휴지가 없는걸 발견할 때
  • 아빠랑 술 취한 채로 택시타고 타고 가다가 토할 것 같은데 못 내리겠고 가진 건 빈병 하나. 거기다가 토하다가 넘쳐 흘러버릴 때
  • 반장이라 반에 배달 온 빵 한 박스를 가지고 뛰어가다가 남자반 앞에서 대걸레로 물바다된 앞 복도에서 미끄러져 빵은 복도에 쫙 다 날라가고 나는 뒤로 대자로 뻗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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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지나간 날들이 사무치도록 그리워지는 날이 있다.그리고 마음 속에 생각 나는 단 한명의 소울메이트 같은 그 사람이 한 켠에 서서 웃고 있다.내가 아무 걱정 없이 가장 해맑게 웃을 수 있게 해 주던 사람.나를 위해 많은 걸 버릴 줄 알았던 사람.이기적이었던 나는 나의 것을 버릴 줄 몰랐고 그래서 그 사람을 버렸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그 사람 나이가 되자그 사람의 선택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으며그 사람이 나를 위해 얼마나 큰 것들을 해주었었는지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작년에 오랜만에 통화하던 그 사람이 그러더라.

"그런데 말야…. 우리 아무리 해도 다시…. 할 순 없는거지?"
"응….그런 것 같아…."


우린 다시 만나면 또 똑같은 문제들로 부딪히고 서로의 마음을 아프게 할 것이다.그런데도 내 연애의 긴 추억들 중에가장 예쁘게 자리잡은 그 사람과의 기억은…왜 그리운걸까….

그 사람의 페이스북을 보면서 문득 참 보고싶었다.해맑게 웃으며 나를 응원해주던 그 모습이 참 그리웠다.0.0000…1%의 의심할 수 없는 깨끗한 마음을 담아나만을 사랑해주었던 그 때 그 사람이 참 소중했었다고…이제야 깨달아버렸다.그리고 그런 사람이 참 흔하지 않은 사람이란 걸 이제야 알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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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서 하나 좋은게 있다면, 상처를 받아도 예전처럼 그렇게 심하게 가슴이 억하게 무너지도록 아프지 않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바꿔 말하자면 그만큼 상처 받는 것에 익숙해져서 무딜대로 무뎌진 가슴이 통증을 잘 인식하지 못 한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울컥해서 눈물이 날 때가 있다. 다른 사람이 한 말 때문에.  언제나 그랬던 것 같다. 동성 친구에게는 그런 일이 거의 없었는데 늘 붙어있는 이성 친구나 애인에게는 늘 3년이란 시간이 가장 관계가 행복할 수 있는 맥시멈인 것 같다.  나에게는 넘지는 말아야 될 내 주위에 선이 있는데 그들은 늘 그 선을 넘어들어온다.  선을 넘어 들어온다는게 무슨 말인고 하니, 친구나 애인으로서는 해도 될 말과 해서는 안 될 말이 있는데 그걸 넘어 들어오는 것이다.  너무 친해져서 그런 말을 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그렇게까지 막 말을 할 수 있는 사이는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류의 어떤 말을 하는 경우에는 갑자기 가슴이 억하고 무너지는 수가 있다.  3년이란 시간동안 방심해 있다가 뒤통수를 한대 후갈겨 쳐 맞는 것처럼 말이다.

고슴도치는 어릴 때부터 잘 길들이면 가시를 바짝 세우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순수하게 부드러운 자신의 뱃면 바닥을 까 뒤짚어서 보여줄 정도로 아주 다정하다.  그러나 주인 외에 다른 사람이 오면 가시를 바짝 세우고 늘 긴장하고 있다.  온몸이 경직된 것 마냥.  그래서 다른 이들은 고슴도치를 가까이 하기엔 너무나 먼 존재이다.  그러나 이 고슴도치에게는 늘 가시가 있기 때문에 어떠한 가까운 이라도 어느 정도까지의 거리는 늘 유지하게 된다.  뱃면을 뒤짚어서 보여주었던 늘 사랑스런 주인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가시를 세우고자 한다면 뱃면을 더 이상 보여주지 않으면 되는 것이고 가시를 바짝 세우면 주인은 더이상 가까이 다가설 수가 없다.

나에게는 늘 가시가 있다.  아무리 평소에 뱃면까지 보여줬던 이라 하더라도 언제든지 멀리 그 사람을 떼어내 버릴 수 있는 그런 경계 방어 체계선이 있다.  그런데 나와 가까워진 이들은 늘 그걸 잊는 듯 하다.  난 그냥 물렁한 인간처럼 보이나보지.  그 경우엔 다시 가시를 세우게 된다.  바짝해서 그 사람이 어느 정도로는 가까이 다가올 수 없게.  아무리 나를 생각했다 하더라도 선을 넘은 말은 나와의 관계에서 있어서는 내가 용납할 수 없기 때문에. 

나와 매우 친한 이가 있다.  가끔해서 선 경계를 왔다갔다 거리는 경우가 있었지만 이번엔 좀 욱신거린다. 너무 가까워서 그런 일이 발생한 줄도 알고 나를 생각해서 말했다는 것도 알지만 그래도 그렇게까지 하는 건 싫다.  다시 가시를 세우고 거리를 두는 수밖에.  그 관계가 참… 아쉽다.  흠. 늘 3년 쯤 정도다.  짧을 수도 있고 길 수도 있지만 늘 그 정도 쯤이다. 이곳을 떠나는 마당에 이렇게까지 되는건 별로 원하지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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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기타 리듬과 John Mayer의 섹시 보이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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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랜만에 책이 너무 읽고 싶어서 아침부터 지금까지 계속 여러가지 책만 읽었다.  드라마 보는거나 만화책 보는 것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는 나이긴 하지만 책은 역시 또 책 나름의 매력이 있는 것 같다.

  • 우선 아직 다 안 읽었지만 앞의 챕터 하나 정도 읽은 신채호 선생님의 “조선 상고사.”  

어렸을 때부터 국사나 세계사 등 역사 관련 책이나 소설, 드라마, 영화는 정말 열심히 보는데 신채호 선생님의 “조선 상고사”는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초등학교 때 보았던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일연의 “삼국유사”가 어떤 정치적 소견 내에서 씌여졌는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알게 되었고 역사라는게 어떤 식으로 판단하여야 하는지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왜 기자조선이 거론이 되는지, 고려의 역사가 그닥 제대로 다루어지고 있지 않은지, 고구려의 위대한 전투인 안시성 싸움이 왜 비중이 약하게 다루어 지고 있는지, 발해의 역사 사료가 왜 남아있지 않은지, 일본인들이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할 때 어떤 식으로 반박해야 하는지 여러가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예전에 고등학생 때, 외국어 과목 외에 내가 제일 좋아했던 과목이 국사였다.  정말 훌륭한 국사 선생님이 있었는데 국사 책 내에 나오는 모든 사건들의 세부 사건까지, 그리고 역사적 배경까지 모두다 풀어서 설명해준 선생님이셨다.  다들 그 시간에 졸려하고 많은 학생들이 자곤 했지만 나만은 모든 내용을 다 깨알같이 교과서에 필기하면서 수업 시간에 열심히 들었었다.  선생님의 수업을 듣고 있노라면 그 시대에 내가 지금 다녀가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초등학교 때부터 내가 방송했던 사극들은 아빠 때문에 내가 거의 다 보았었는데 그 사극 중에는 내가 알고 있던 내용과 많이 달랐던 것도 있었고 정반대였던 내용도 있었다.  또 몰랐던 내용들도 있었다.  물론 사극이라는게 허구성을 지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지만 반대나 다른 내용들은 다시 한번 생각해보아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  

신채호 선생님도 이런 내용을 지적하고 있다.  역사를 볼 때 과장되고 부풀려진 것은, 자랑스러워보이는 것이라 할지라도 거짓을 고해서는 안 되고 또한 가짜들 중 가짜와 가짜들 속에서 진짜 역사를 발견해 내는 안목도 필요하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고조선에서 현재까지 이어지는 역사가 왕조가 바뀔 때마다 뒤엎어지고 끊어지고, 승자만의 역사만 남고 패자의 역사는 묻혀지는 그런 역사가 아니라 모두다 계속해서 이어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그 당시 같이 존재 했던 모든 나라들은 서로의 영향을 주고 받았음을 잊지 않아야겠다.  

불교에서 유교로 넘어오면서 그리고 중간에 몽고의 통치와 일본의 통치가 있으면서 다른 나라로부터 개입된 시각으로 적혀진 주관적인 역사 기록도 적극적으로 배제할 수 있어야 올바른 역사 시각을 지닐 수 있다고도 이야기하고 있다.

역사는 모든 학문의 근간이다.  역사를 모르고서야 어찌 대한민국 국민이라 하겠는가.  내가 비록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시민권자이긴 하지만 나는 어디 가서 자랑스럽게 나를 Korean이라 말하겠다.  미국의 몇백년의 짧은 역사와 한민족의 몇천년의 역사를 어찌 비교할 수 있으랴.  또한 요즘 내 또래 친구들을 보면 국사를 제대로 빠삭하게 아는 이가 없는데 그건 아주 부끄러워할 일이다.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그 역사를 알지 못 하면 외국에서 우리나라에 대해 물어오면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명박 정권이 교육 과정 개편 중에 국사를 선택과목으로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정책을 추진하던가 그랬는데 국사와 국어는 필수다.  한나라의 얼과 정신이 없는 한 그 나라의 국민으로서의 자격이 없다 할 수 있겠다.  

일제 강점기 치하에서 일제에 흔들리지 않는 정신으로 굳건하게 한민족의 역사를 재조명하였던 신채호 선생님께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 또한 과장도 축소도 모두 다 채찍질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역사 문헌을 정리하고자 노력한 모든 사학자들에게도 고개 숙여 깊이 감사를 드린다.  다들 역사를 한번쯤 돌아보고 외국인들이 한국 박물관에서 어떤 것에 대해 물어오더라도 자신있게 답변 할 수 있을 정도로 역사에 대해서만큼은 깊은 경외심을 갖고 대했으면 한다.  이것이 이책이 시사하는 바다.  시간이 나면 삼국지가 아니라 우리 나라 역사서 한권을 사서 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 오랜만에 읽은 생텍쥐베리의 “어린 왕자”.

어린 왕자를 처음 읽었던 건 초등학교 때? 아님 중학교 때? 인 것 같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도 아직 많이 서투른 나이였었고 어른들과 아이들의 벽이 그리 크다는 것도 많이 깨닫지 못 하는 나이였기 때문에 이책이 지닌 아주 큰 의미는 제대로 깨닫지 못 한 채 그냥 그런 책으로 느껴졌었다.  대학 온 이후에 다시 한번 읽으려고 했었으나 무슨 일 때문엔지 읽다가 말았었다.  아마 다른 바쁜 일로 인해 그냥 읽다가 말아버린 채로 그냥 시간이 흘러버렸다.

오늘 이책을 접할 때는 진심으로 이책을 가슴으로 마주하고 읽게 되었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 했다.  왜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 했을까.  어렸을 때 이 앞머리 부분을 읽으며 이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어른들이 동화를 읽나?  어른들에게 동화가 필요한가?"

막상 내가 어른이 되었을 때, 나는 동화에 다시 목 말라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른들의 이야기와 글 속에는 맑고 영롱하고 깨끗한 세상이 아닌, 폭력과 상처, 비난, 무질서, 부패가 난무한 세상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한번 이 말머리를 접하였을 때는, 아…작가가 어른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구나.  아이들의 맑고 순수한 시각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구나 했다.  그리고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어린왕자와 주인공은 한 사막에서 만난다.  어린왕자는 계속해서 질문을 하고 주인공은 일주일 밖에 남지 않은 물을 가지고 비행기를 고치며 답변한다.  비행기를 고치느라 바빠죽겠는데 계속해서 말을 거는 어린 왕자에게 어른인 주인공은 그냥 무성의하게 답변을 하고 어린 왕자는 말한다.

"내가 아는 다른 어른들과 똑같은 대답을 하네요."

어릴 때의 나는 남이 어떤 질문을 물어오면 진심을 가지고 대답을 했다.  진심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남보다는 내가 더 중요해졌다.  그래서 나와는 별 필요가 없다고 하는 질문에는 대답을 안 해버리거나 다른 이야기로 전환을 하거나 대강 대답을 하거나 하는 식의 방식을 취하였다.  상대방에 대해 무성의해진 것이다.  어릴 때, 사람과의 관계에서의 진정성이 피상적으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필요할 때만 대답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엔 외면해버리는… 이런 변화를 어린 왕자가 지적을 한 것이었다.  

어린 왕자에서 묘사 되는 지구는 참으로 무섭도록 쳇바퀴 돌듯이 똑같이 도는 세계이다.  철도를 타고 이곳에서 저곳으로 자신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지도 못 한 채 왔다갔다 하루 속을 살고 있고 그 하루 또한 등대지기의 하루와 같이 이곳의 하루가 저곳의 하루로 전염이 되고 그렇게 지구 한바퀴를 돌면 또 다른 이곳의 하루가 시작될 뿐이다.  사회는 자신과 남을 주인과 신하로 생각하는 인간들과, 자만심이 극에 달하는 인간들과, 소유욕이 강하여 눈에 보이는 헛된 것만 계산하고 집착하는 인간들과, 직접 경험은 안 하면서 들은 이야기들로만 그럴듯하게…가짜를 진짜같이 정리하는 그런 사람들로 가득차 있다고 그렇게 묘사된다. 이곳 삭막한 지구 말이다.  

그런 와중에도 하나 삶의 의미가 있다면 바로 관계이다.  여우가 가르쳐준 길들임의 관계.  처음에는 아무 의미도 없는 사물이고 생물이지만 조금씩 일상으로 스며들고 그 사이의 거리가 좁혀드는 의식을 치를 때, 바로 서로가 서로에게 길들여지는 관계가 맺어지고 마음을 주게 되는 것을 말한다.  어린 왕자와 여우와의 관계도, 주인공과의 일주일간 사막에서의 만남도, 그리고 어린 왕자의 소행성 별 장미와의 관계도 다 이 관계 때문에 의미를 지닌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미가 될 수 있는,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에서처럼 관계를 한번 더 생각해보고 그것으로 인해 다시 삶의 의미를 찾았으면 하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관계에 상처 받은 나 같은 사람이, 다시 마음을 극복할 수 있는 것도, 그리고 삶의 의미를 찾게 되는 것도 다시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다른 사람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어서 나에게 상처를 주었을 지언정, 또 다른 사람에게 내가 어떤 큰 의미가 될 수 있다면, 그렇게 사는 것이 또 큰 의미를 담은 삶이 아닐까 생각된다.

  •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두노인,” ”사람이 있는 곳에 신도 있다.”

톨스토이는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소설들에서 많이 그리는 경향이 있다.  첫번째 단편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해서는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사람에게 무엇이 깃들여져 있는지, 사람에게 무엇이 주어져있지 않은지, 그리고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나머지 소설들에서도 인간의 베품과 자비, 사랑에 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사람은 자신이 언제 죽을지도 모른채 앞으로 살 날만을 걱정하고 있다.  그리하여 사는 날 동안 현세에 대한 집착이 강하며 쓸데 없는 걱정도 많이 하고 신에 대한 원망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것이 다 죽고 나면 쓸데 없음을 이야기 한다.  아무 것도 자신에게 남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하느님은 사랑의 하느님이며 인간 또한 본성으로 남을 사랑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고, 이 마음을 다른 이에게 베풀면 곧 또 다른 이에게 그 베품이 옮겨가리라고 톨스토이는 이야기하고 있다.  또 신약성서에서 이야기하듯이 가장 모자란 이에게 베푼 것 하나가 바로 하느님에게 베푼 것이니, 모든 이에게 평소에 잘 하란 교훈을 주고 있다. 

누군가 나에게 베풀었을 때, 나는 그만큼 똑같이 남에게 베풀었는지…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다.  또한 나를 아는 이들에게만이 아니라 낯선 사람에게는 잘 베풀었는지 반성하여 보았다. 아마도 낯선 이들에게는 냉정하였던 것 같다.  길거리 빈민들을 그냥 지나치고 무관심으로 넘겨버리고 그러하였던 것 같다.  그들도 그들 나름의 사정이 있을텐데… 그리고 혹여 베풀어도 나의 전부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아주 최소한 만큼만. 그렇게 하였던 것 같다.  이런 나의 모습을 꼬집는 소설이었다, 톨스토이의 단편들은… 부족한 나의 모습을 다시 돌아보며 반성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사랑의 묘약,” “한시간만 더”

슈니츨러 작가 본인의 삶을 보면 카사노바의 삶을 옮겨놓은 것과 같았다고 말한다.  ”사랑의 묘약”이라는 이 소설은 여자를 만나고 만나도 다 자신의 것이 아님에 목말라하고 그래서 그 여자의 모든 것을 소유하고 싶은 남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주인공은 그러하기에 사랑의 묘약을 여자들에게 사용하는데 처음 사용한 사랑의 묘약은 여자들에게 가장 황홀했던 순간을 고백하게 만든다.  하지만 놀랍게도 여자들은 주인공이 아닌 다른 남자와의 기억들을 고백한다.  그리하여 주인공은 다시 다른 묘약을 찾아 길을 떠난다.  두번째 찾은 사랑의 묘약은 바로, 여자들의 과거의 기억을 지울 수 있게 해주는 것.  그래서 현재의 이 남자만 기억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도 역시 여자의 과거와 현재를 소유할 뿐 미래는 소유할 수 없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주인공이 너무 사랑하는 소녀를 만났을 때 세번째 사랑의 묘약을 사용하게 된다.  이것은 미래에도 다른 남자를 만나지 않고 그만 영원히 사랑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 묘약의 사용은 그 소녀를 주인공의 손에서 죽게 만든다.  죽음으로써, 더이상 다른 사람은 사랑하지 못 하고 오직 그 남자만 영원히 사랑 할 수 있게 됨을 말한다.  

우리는 사랑에 관한 착각을 한다.  과거의 사랑에 관해 질투하고, 현재의 사랑을 의심하며, 미래의 사랑에 대해 맹목적인 사랑을 강요한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바뀌는 법.  늘 한결 같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과거의 사랑은 과거일뿐, 현재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그걸 있는 그대로 믿어주어야 하는데 사람들은 의심한다.  그리하여 묻고 또 묻고 자멸을 초래한다.  결국 자기만 더 비참해지는 것이다.  또한 사랑이 작을 때도 있고 클 때도 있고 사랑이 변할 수도 있는 물 흐르는 것과 같은데 늘 똑같이 균등하게 한결같음만을 고집한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부모형제 관계가 늘 한결같을 수 없듯 오르락 내리락이 있듯 연인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오르락 내리락이 있는 것이다.  또한 부모형제 관계는 혈육으로 묶여있기 때문에 어쨌든 간에 평생 지속되지만 연인이나 부부 관계는 혈연적으로는 남남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끝날 가능성이 있는 것은 염두해 두어야 한다.   너무 집착하지 말고 자연스레 두어라.  그게 슈니츨러가 말하는 바인것 같다.  

두번째 작품에서는 인간의 목숨이라는 주제로 바꾸어 이야기하고 있는, 이 역시도 주제는 같다.  목숨은 천사와의 거래로 늘어나거나 줄어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차피 정하여 진 것이므로 바꾸려고 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인간의 노력을 될 수 없는 일이라면 너무 지나친 집착이나 욕심 등이 인간을 결국 자멸시킬 수 있기도 하다는 것을 슈니츨러는 경고하고 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끝났을 때 그 남은 감정에 집착을 많이 해보았던 나로서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실제로는 그 감정을 버리는 것도 참 힘들다고 감히 변명하고 싶다. 

  • 김영랑 시집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배운 한국 근대시.  그게 바로 “돌답에 속삭이는 햇발”이었다.  가사가 참 보드랍고 아름답고 영롱하다. 그렇게 배웠던 것 같고 내 인상도 그때는 그러하였다.  역사적 배경도 그냥 머리 속으로만 외웠을 뿐 가슴으로 시를 읽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그의 다른 시들을 읽으니 나라 잃은 슬픔과 애잔함이 참으로 많이 묻어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마음으로 다시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을 읽으니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 같이
시의 가슴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라고 적은 조국 해방의 강한 염원이 참으로 눈물 나게 슬프다.   ”독을 차고”란 시에서 말하길,

"앞뒤로 덤비는 이리 승냥이 바야흐로 내 마음을 노리매
내 산채 짐승의 밥이 되어 찢기우고 할퀴우라 내맡긴 신세임을
나는 독을 차고 선선히 가리라
막음날 내 외로운 혼 건지기 위하여”



라 한 외로운 독립운동의 그 의지.  붓을 두번이나 꺾으면서 저항하신 그 문단과 조국애에 관해 진심으로 존경을 표한다고 이 후손은 말하고 싶습니다.  대한민국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 박용철 시집

예전에 수능 언어영역을 위해 현대 시를 공부하던 중에 우아- 하며 감탄했던 시가 있었는데 바로 박용철 시인의 “바다와 나비”라는 시이다.

아무도 그에게 수심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모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완벽한 호흡과 이미지. 그리고 감성의 표현이 너무나도 그림 같아서랄까.  그의 다른 시들도 읽어보았다.  ”십오야”나 “굴뚝” 그리고 “병든 풍경” 등은 시가 아니라 마치 한편의 수채화 같다.  너무나도 선명하게 그려지는 이미지가 슬픈 그 당시의 현실을 평화로운 자연과 대조하여 보여주는 듯 하다.  또한 ”데모크라시에게 바치는 노래”나 “곡 백범 선생” 등의 시에서는 민족 의식을 강하게 보여주어 한 나라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지금 존재하는 건, 이런 수많은 문호 등 애국자들이 존재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그들에게 우리는 깊이 감사하고 존경의 마음을 표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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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밤에 듣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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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땐 놀다가 손톱이 까매지는 줄 모르고 계속 놀곤 했다.  왜 그런지 몰라도 늘 손톱 끝이 까맸다.  엄마아빠에게 물어보면 어른이 되면 깨끗해진다고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중고등학교를 가게 되자 손톱 끝이 깨끗해져갔다.  왜 그랬을까… 


오늘 문득 화분 흙을 만지다가 손톱이 까매져서 어렸을 때 생각이 났다.  그 땐 왜 까맸고 지금은 왜 늘 깨끗할까.  손을 덜 씻어서 그런가?  그런 것도 아니다.  내 기억에 더러울 정도로 잘 안 씻고 다니진 않았던 것 같다.  왜 어렸을 때는 그렇게 까맸을까… 


생각 해 보면 그림 그리는 시간에 온갖 군데가 다 얼룩이 졌었다.  물감으로, 크레파스로, 숯으로…. 그리고 흙을 가지고 많이 놀았다.  철봉놀이 하는 걸 매우 좋았했었는데 철봉 틀에서 놀다보면 아래 모래 사장에서 모래와 함께 많이 쭈그려 앉아서 놀곤 했다.  우리 초등학교 주위는 다 그린벨트 숲인데 학교 주위에서 이곳저곳 따 먹고 놀기도 했다.  모과도 따먹고 산딸기도 밤도 감도 이것저것 많이 따 먹었었다.  아카시아랑 진달래 꽃도 빨아먹기도 하고… 그리고 다람쥐가 자주 다니는 돌 미끄럼틀이 있었는데 교복 지저분해지는 줄 모르고 돌 미끄럼을 타다보면 온 옷과 손바닥이랑 신발이 흙투성이었다.  


점점 커가면서 나는 자연을 외면해버렸다.  자연과 어울리는 법을 잊어버렸다.  흙을 만질 기회도, 자연과 어울려 노는 법도, 어느 샌가 잊혀져서 어느덧 그냥 학교 입시에 자연스레 찌들어갔다.  


중학교 1학년 겨울 방학 때, 나 혼자, 친구가 사는 하와이에 10일 동안 간 적이 있었다.  그때 친구가 야구를 하자고 했다.  헐….한번도 내가 안 해본 야구라니…. 야구는 보기만 했지 그냥 내가 하는 건 두려운거다.  그래서 엉성하게 헛스윙만 계속 하다가 한번 엄청 멀리 날아갔던 기억이 난다.  또 다시 친구는 그 이후에 인라인을 타자고 했다.  스케이트만 타봤지 인라인은 또 처음;; 내리막 길에서 멈추는 법을 몰라서 주욱 타고 내려갔었다.  그 이후 친구는 바닷가에서 수영하는 걸 가르쳐주었다.  수영장에서만 수영을 해봤지 바다 수영은 처음이었다.  하와이는 주위가 산호로 둘러쌓여 있어서 대부분 수심이 낮은데 산호 경계 밖으로 나가게 되면 갑자기 수심이 엄청 깊어져서 발이 절대 안 닿는다.  친구가 그 경계에 가서 파도를 타면 재미있다고 해서 파도 타다가 엄청 많이 바닷물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굉장한 공포감도 맛보아봤다.   


그 뒤로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또 다시 입시에 찌들어갔고 자연과 접할 기회는 없어졌다.  내 손톱도 그만큼 깨끗해졌다.  예전에 까맸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만큼이나….  


생각해보니 내 손톱이 그동안 깨끗했던 이유는 흙을 멀리해서이다.  흙과 나무와, 자연과 친했던 그 어렸을 시절엔 내 손톱은 흙의 색을 닮아있었다.  절대 더러웠던게 아니고 그냥 말 그대로 “자연”스러웠다.  자연을 닮아있었으니까.  


지금은 왜 “자연”스럽지 않을까… 마음의 여유가 없는걸까.  내 주위에 늘 자리하고 있던 자연을 돌볼 여유가 없을만큼이나…  
오랜만에 화분 흙을 갈기 위해 우리 집 주위에 있는 숲에 가서 낡은 흙을 버리고 새 흙을 퍼왔다.  촉촉하고 만지면 부드럽고 느낌이 너무 좋다.  좀더 “자연”한테 가까이 가야겠다.  그러면 내 마음에 평화도 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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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Meyer’s “Your body is a wonderland”

비오는 저녁, 차 안에서 나오는 라디오에서 나오던 노래.

Shazam 덕분에 노래를 찾을 수 있었다.

John Meyer 목소리가 너무 달콤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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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읽던 동화책 중에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책이 있었다.  인간에겐 누군가를 옅보고 훔쳐보고 싶은 마음이 있고 또 만약 그 비밀을 알게 되면 혼자만 간직하는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말하고픈 크나큰 욕구가 생겨난다.  어디서부터 이러한 마음이 유래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간에 자신이라는 그릇 안에 나의 비밀 뿐만 아니라 남의 비밀까지 같이 담아두기엔 그릇이 아주 적은 까닭이다. 어렸을 때 그 동화책을 읽으며, 대나무 밭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지르던 그 사나이의 모습을 보며 하하하 한참 웃곤 했는데 요즘 생각해보면 그 동화책은 참 잘 썼다는 생각이 든다. 그 사나이는 남에게 말하고픈 욕구도 풀었고 결국 남에게 말하지 않았으니 임금님의 비밀도 간직했다. 나름대로는. 그러나 실제로는 대나무 밭에 바람이 불어 남에게도 전해졌으니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 사나이의 욕구는 어쨌거나 충족이 된 것이다. 참으로 엄청난 비밀과 폭로의 스토리 전개이다.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 나에게도, 그리고 모든 다른 사람들에게도.  내가 내 비밀을 말하지 않는 이상 누군가에게 퍼져 나가는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나의 비밀을 “이거 너한테만 비밀이야.”하면서 한명 두명 공유하게 된다면 그 일은 어떤 식으로든 퍼져나간다.  사람들은 그 퍼져나감을 각오하고 남에게 비밀을 이야기 할 줄 알아야 한다. 또 하나의 다른 경우, 나의 비밀을 남과 함께 동시에 공유하고 있는 경우(어떤 사건에 있어서 동시간에 같은 장소에 있었던 경우)는 서로가 서로의 비밀을 말하지 않는 이상 퍼져나가지 않는다. 하지만 누구 한 사람의 규칙에 있어서의 배반이 이루어지는 경우, 그것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닌 것이 되어버린다. 

나에게는 남과 함께 공유한 어떤 비밀이 있다.  행복했던 순간에서 악몽으로 바꾸어버린 어떤 사건에 대한 기억이다.  그사람도 나도 또 다른 3자도 누구에게 이야기 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지금까지는.  그런데 그 규칙을 참 깨고 싶어진다.  나와 제 3자는 아직도 그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 하고 있는데 그 사람 혼자 행복해졌다는데에 대한 미움이랄까.  그래서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랄까.  하지만 그러면 안 된다는 것도 안다.  몇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나에게 극복을 위한 시간들이 주어졌고 나는 그 기회에서 패배자인 것이다.  그 기간 동안 나는 극복 못 한 사람이요, 그 사람은 극복한 사람이다.  패배했다고 해서 그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된다고 나의 이성은 말하고 있다.  감성과는 별도로 말이다.  이럴 때는 맘 같아서는 참 무인도 같은데 가서 다 소리지르고 싶은데…. 참 답답하다.  

분통 터져봐야 소용 없고 누군가에게 말해봐야 더 이상 비밀이 아닌게 되기 때문에 더 이상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단지 조금의 서운함과 원망과 미음. 그리고 내가 앞으로도 계속 극복해야 할 그 시간의 상처가 문제랄까.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것은 머리로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별 수 없지.  그냥 자연스레 시간이 흐르는 물에, 내 마음의 집착과 원망을 흘러내버려줄 수 밖에…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지만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인 것이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는 게 속이 시원하지. 차라리.